작가 진윤영 극단 한무대 대표 최종욱
“초교 시절 학예회에서 우연히 연극 리어왕을 했던 경험을 계기로 '나는 연극을 해야겠구나' 싶었죠. 그렇게 부모님 몰래 안양예고 연기전공으로 입학하며 연극 인생을 시작했어요.”
1981년 인천 수봉문화회관에서 했던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하며 배우와 스태프로 활동하던 그는 1991년 전국 최초로 인천에 생긴 시립극단 단원으로도 있었다.
“연극인들에게 자기 극단을 만드는 건 염원이죠. 더 나아가 극장을 만들고 싶은 소원이 있어요. 하나는 이룬 셈이죠. 극단 한무대를 창단했으니까요.”
그는 대한민국 연극계 거장이자 인천시립극단 초대 예술감독을 맡은 고(故) 윤조병(1939~2017) 연출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주의 계통의 작품들로 그를 계승하고자 했다. 특히 현 대표인 진윤영 작가의 희곡은 리얼리즘 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연극이 한무대 작품의 핵심이죠. 토속적이고 인천을 배경으로 한 극을 무대에 올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천에서 고집스럽게 한 길을 걸었다. 노동과 열정보다 소득은 높지 않았다.
30회 전국연극제 인천예선전 인천항구연극제에서 최고의 호평과 함께 작품상과 남여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극단 한무대의 연극 '용서' (진윤영 작, 이필훈 연출) 한 장면./사진제공=극단 한무대
뮤지컬 '바람의 노래'
예진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법대를 다니던 상태를 만나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고 결혼을 한다. 수년간 오직 남편의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하지만 결국 상태는 고시에 낙방하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일한다. 그녀에게 뮤지컬 배우가 꿈인 고2 작은 아들과 의대생이면서 부모 몰래 아프리카 선교를 준비하는 큰아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진은 병원에서 초기 치매 판정을 받는다. 하루 하루 잊혀가는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예진과 그런 그녀를 사랑으로 보듬는 가족과 주변의 이야기가 수채화처럼 맑게 펼쳐진다.
궁녀 김개시는 선조의 나인으로 발탁되고 다시 광해군의 지밀나인이 된다.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위 제거에 앞장서는 등 광해군의 왕권 강화를 위해 온갖 악역을 도맡아 하는 등 정치적 수완도 뛰어났다.
김개시는 광해군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실질적인 오른팔 노릇을 하고 광해군은 그런 김개시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김개시는 이런 광해군을 이용하여 권력을 키우며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심지어 광해군의 잠자리까지 관여할 정도로 그녀의 권력은 막강했다. 인조반정 당시 김개시는 반정의 조짐을 알고 있었으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광해군을 배신하고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고 결탁하며 반정 후의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는다. 여러 대신이 반정의 조짐을 광해군에게 상소하였으나 김개시는 이 모든 상소를 내치고 김자점이 충신이라고 고한다.
궁의 배신과 사랑, 반전을 풀어낸 극단 한무대의 대표작.

연극 '남생이'인천의 동화작가 현덕의 작품을 연극으로 제작한 남생이는 노마라는 어린이의 시각을 통해 그의 가족이 겪는 비극을 소재로 했다.
농민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의 고독한 분투를 그렸다. 작품에 일제강점기 인천항 부근의 빈민촌의 사실적인 풍경도 흐른다.
뮤지컬 '바람의 노래'
예진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법대를 다니던 상태를 만나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고 결혼을 한다. 수년간 오직 남편의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하지만 결국 상태는 고시에 낙방하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일한다. 그녀에게 뮤지컬 배우가 꿈인 고2 작은 아들과 의대생이면서 부모 몰래 아프리카 선교를 준비하는 큰아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진은 병원에서 초기 치매 판정을 받는다. 하루 하루 잊혀가는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예진과 그런 그녀를 사랑으로 보듬는 가족과 주변의 이야기가 수채화처럼 맑게 펼쳐진다.


